이은자씨가 남편과 찍은 사진을 보고 있다. 임성민 기자오송 지하차도 참사가 발생한 지 벌써 2년이 됐다.
소중한 가족을 떠나보낸 유가족들은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와 죄책감을 안고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다.
치과의사 아내 이은자씨 "남편은 없지만 집에는 흔적 그대로 "
치과의사였던 A씨는 활발하고 유쾌한 성격 덕에 환자는 물론 물론 동료들 사이에서 늘 인기가 좋았다.
가족에게는 다정한 남편이자 친구 같은 아빠였다.
그러나 A씨는 당일 오창으로 출근길에 올랐다가 사흘 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아내 이은자씨는 "출근하면서 현관문이 닫히기 전에 한번 더 안아주고 갔다"며 "마지막도 아닌데 왜 그러냐고 서로 웃으면서 헤어진 게 진짜 마지막이 될 줄 몰랐다"고 말했다.
당시 그의 가방에서 나온 건 업무용 노트북과 휴대전화, 지갑, 수첩 등이었다.
이런 남편의 유품은 이제 이씨만 간직하고 있다.
어느덧 2년이 흘러 무뎌졌나 싶다가도, 남편이 남기고 간 흔적을 보면 울컥 쏟아지는 눈물이 그저 야속하기만 하다.
이씨는 "옷을 한번 정리하려고 하면 그 옷을 입었던 모습이 생각나 버리지도 못하고 그냥 상자 안에 정리했다"며 "남편이 쓰던 면도기나 칫솔도 전부 그 자리에 그대로 놔두고 있다"고 눈물을 보였다.
이씨가 모아놓은 남편 A씨의 유품. 임성민 기자고통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괴로운 시간이었지만, 이씨는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즐거운 일상이 남편이 정말 원하는 모습일 것 같아서다.
이씨는 "우리가 웃어도 되는지 행복해도 되는지 그런 생각을 하며 괴로워했지만, 지금은 남편이 그런 모습을 오히려 원치 않을 거라 생각한다"며 "남편을 위해, 우리 가족을 위해 일상으로 돌아가 앞으로 행복하게 살려고 한다"고 말했다.
장성한 쌍둥이 딸과 막내아들도 이씨를 위로하며 힘을 보냈다.
그는 "딸들은 이제 무슨 일이든 저와 의논하고 같이 결정하고 함께하려는 모습을 볼때 힘이 된다"며 "아들도 학교도 잘 다니고 여러 가지 일에 의욕적이고 생활하려는 것 자체가 큰 위안이 되고 그 자체로 대견하고 감사하다"고 전했다.
생존자들 "구하지 못한 죄책감 크지만, 희생자 위해 목소리 내겠다"
생사의 기로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생존자들 역시 참사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오송 참사 생존자 B(50대)씨는 지하차도 안에서 같이 탈출하다 물살에 휩쓸린 한 아주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불현듯 떠오른다.
밀려드는 흙탕물에 중앙분리대와 천장 구조물을 지지대 삼아 겨우 빠져나왔지만, 같이 탈출하던 아주머니를 끝내 도와주지 못한 죄책감 때문이다.
B씨는 "지하차도 안에서 한 아주머니가 도움을 요청해 같이 탈출하려고 옆으로 다가갔는데 물살이 너무 세 접근이 쉽지 않았다"며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고개를 돌리니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고 울먹였다.
극적으로 살아남은 B씨는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자신이 오송 참사의 생존자인 것을 알았고, 이후 극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었다.
B씨는 "1년 넘게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제대로 잠 한번 자본 적이 없다"며 "정신과 치료와 함께 약도 먹었지만, 오히려 부작용이 생겨 더 힘든 나날을 보냈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청주의 한 카페에서 열린 오송 참사 2주기 토크 콘서트. 임성민 기자정부와 지자체는 사과는커녕 책임을 회피하기에만 급급했다. 주변에서 무심코 내뱉은 말들도 B씨를 더 괴롭게 만들었다.
B씨는 "주변 사람들이 참사 당시 살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제 이야기를 '모험담' 정도로 생각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며 "이후부턴 생존자였던 것을 숨기고 살았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그날의 기억은 이들을 더욱 옥죄지만, B씨는 고통받는 참사 피해자가 두 번 다시 나오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목소리를 높이려 한다.
B씨를 포함한 참사 피해자들이 거리로 나서는 것도, 김영환 충북지사 등 최고책임자들을 중대시민재해 혐의로 고발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B씨는 "우리가 외치는 목소리는 유가족과 생존자들만을 위한 게 아니다. 억울하게 돌아가신 희생자분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며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대책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