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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동산교회 박창영 장로 "아이스크림으로 더 달콤해진 교제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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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CBS 만나>
점심 후 아이스크림 나눔으로 성도와 이웃에 기쁨 전달
어린 시절 철야 기도와 새벽 기도, 신앙의 뿌리로 이어진 삶
가정과 교회 중심의 삶, 아내와 함께한 믿음의 동역
캄보디아 선교와 지역사회 섬김, 나눔의 열매 실천

■ 방송 : 충북CBS 라디오  청주 FM 91.5MHz, 충주 FM 99.3MHz (13:05~13:35)
■ 제작 및 진행 : 최영실 아나운서
■ 출연 : 박창영 동산교회 장로(이성득목사님 시무)
청주동산교회 전경청주동산교회 전경(이성득 담임목사님)
◇ 진행자: CBS만나 오늘은 동산교회 박창영 장로님을 모셨습니다. '아이스크림 장로님'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시는 분인데요, 오늘 직접 만나서 어떻게 얻게 된 별명인지 들어봅니다. 장로님, 안녕하세요?

◆ 박창영: 네, 안녕하세요.

◇ 진행자: 무더운 여름에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올해 여름은 정말 유난히 더웠잖아요. 그런데 동산교회의 시원한 여름 문화, 바로 아이스크림 나눔이 올해는 더 큰 사랑을 받았을 것 같아요. 인기가 많았죠?

◆ 박창영: 네, 올해도 역시 굉장한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제는 여름에 동산교회의 상징처럼 자리 잡으며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 진행자: 이 사역은 참 캐주얼하고 달콤하면서도 시원한 기쁨이 있는 사역 같아요. 어떻게 시작되었고, 장로님께서는 아이스크림 사역에 대해 어떤 의미를 두고 계신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 박창영: 네. 작년에 특별한 행사를 교회에서 시작했습니다. 5월부터 8월 말까지 주일 점심 식사 후에 전 교인에게 매주 아이스크림을 무료로 나눠드렸습니다. 로마서 12장 말씀에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는 구절을 마음에 두고, 하나님께서 제게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며 대접하게 된 것이지요. 더운 여름에 작은 아이스크림 하나지만 드시면서 행복해하시는 성도들의 모습을 보며 오히려 제가 더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 진행자: 아이스크림이 동심을 일깨워주기도 하고, 어르신들도 맛있게 드시면서 기분이 좋아지셨을 것 같아요. 올해 여름은 초여름부터 불볕더위가 계속됐는데, 입추가 지나면서 조금 달라지긴 했지요. 그래도 아이스크림으로 기쁘고 시원하게 여름을 나시길 바랍니다. 이 행사가 8월 말까지 진행되지요?

◆ 박창영: 네, 그런데 올해는 9월 말까지 일정이 꽉 차 있습니다. 예약이 다 되어 있습니다.

◇ 진행자: 그렇군요. 올해 늦더위가 길다고 하니까요. 장로님은 언제 순서를 맡으셨나요?

◆ 박창영: 저는 아직 순서가 오지 않았고, 아마 8월 말쯤 되어야 제 순서가 될 것 같습니다.

◇ 진행자: 그렇군요. 아이스크림을 대접하시려고  성도들이 대기번호까지 타서 기다리시는군요. 성도님들이 참 귀합니다. 듣는 저도 기분이 좋아지네요. 장로님께서는 어린 시절 믿지 않는 가정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하셔서, 새벽기도도 드리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철야기도까지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게 믿음을 쌓아오셨다니 놀랍습니다. 오늘은 어린 시절부터 삶의 중심에 교회를 두고 살아오신 이야기를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제는 자녀 세대까지 신앙이 이어지고 있지요?
점심식사후 , 아이스크림을 나누는 동산교회 성도를점심식사후 , 아이스크림을 나누는 동산교회 성도를
◆ 박창영: 맞습니다. 저는 모태신앙은 아니고, 부모님이 교회를 다니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5학년 때 친구의 권유로 처음 교회에 나가게 되었어요. 그 후에 주님을 만나 찬양예배에도 참석하고, 금요철야기도회에 나가 새벽까지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교회 지하실에서 잠깐 쪽잠을 자고 아침에 집으로 돌아오곤 했지요.

◇ 진행자: 아, 어린 아들이 날이새도록 집에 돌아오지 않아  부모님께서  많이 걱정하셨겠어요.

◆ 박창영: 그렇죠. 초등학교 때 이미 금요철야에 다니고, 방언의 은사까지 받았거든요. 믿지 않는 가정이다 보니 제가 새벽에 철야기도 마치고 집에 들어오면, 어머니가 빗자루 들고 서 계시면서 "도대체 어디를 다녀오느냐" 하실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분이 교회를 열심히 다니시고,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계십니다.

◇ 진행자: 네, 어려서부터 참 성실하셨던 것 같아요. 학교에서는 반장도 도맡으시고 그랬다죠?

◆ 박창영: 네. 제가 그런 모습을 보면서 부모님도 교회를 더 이상 반대하지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부모님께서 하나님을 영접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 진행자: 초등학교 시절부터 새벽기도, 철야예배까지 드리셨는데요. 어린 나이에 어떻게 그렇게 교회에 마음이 끌리셨을까요?

◆ 박창영: 저에게는 참 감사한 기억입니다. 제 어린 시절은 요즘처럼 풍요롭거나 즐길 거리가 많은 시대가 아니었어요. 그런데 제 마음 한 구석에는 늘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있었습니다. 교회라는 곳은 저에게 너무 편안하고 따뜻한 공간이었습니다. 옆에서 기도하는 어른들의 모습, 울려 퍼지는 찬양 소리, 말씀 속에서 받는 위로… 그 자리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제 마음이 평안해지고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 경험을 통해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고, 신앙의 뿌리가 내 마음에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제 신앙의 방향을 잡아주는 나침반이 된 것이지요.

◇ 진행자: 어린 시절 새벽기도도 특별했고, 주님 만나 지금까지 같교회, 동산교회만 섬겨오셨습니다. 그 신앙의 뿌리와 열매는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 박창영: 저도 가끔 생각합니다. 벌써 40년이라는 세월이 너무 빨리 지나간 것 같아요. 돌아보면 특별한 날이라기보다는 평범한 날들의 반복이었습니다. 주일마다 예배드리고, 교회 청소하고, 웃고 울고… 그런데 그 평범한 날들이 쌓여서 오늘의 제가 있게 된 것이지요. 저는 신앙의 뿌리는 '붙어 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씀에 붙어 있고, 교회에 붙어 있고, 하나님께 마음을 떼지 않는 것, 그것이 뿌리입니다. 물론 크게 흔들릴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말씀이 붙잡아 주고, 성도들이 안아 주고, 기도가 다시 숨 쉬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열매라면, 저는 그것이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예전 같으면 똑같은 상황에서 화를 냈을 법한데, 지금은 참고, 또 제 말 한마디에 은혜를 담아 전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저도 모르게 바뀌어가는 모습들, 그것이 하나님께서 제 삶에 맺어주신 열매라고 생각합니다.

◇ 진행자: 네, 믿음의 연륜이 쌓이면서 서서히 변화되는 것, 그것이야말로 큰 열매지요. 장로님 신앙 이야기를 더 이어가자면, 새벽기도와 철야예배, 또 동산교회를 섬기시는 동안 장로님의 아내 되시는 권사님도 같은 교회에서 만나셨잖아요. 같은 믿음 안에서 시작된 결혼 생활, 가정에 주신 은혜에 대해서도 들려주시겠습니까?

◆ 박창영: 네. 먼저 이 부분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저희 처갓집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동산교회 안에서도 저희 처가는 꽤 알려진 가정이거든요. 장인어른과 장모님 사이에 딸 다섯, 아들 둘, 일곱 남매를 두신 다복한 가정이었습니다. 장인어른은 장로님이셨는데, 제가 스물한 살 때 일찍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어요. 지금 제 나이로 보면 저보다 더 젊으실 때 돌아가신 겁니다.

그 당시에는 자녀 일곱 중 한 가정만 결혼했고, 여섯은 미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잘 지내올 수 있었던 것은 장모님의 신앙과 기도의 힘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장모님은 매일 성경을 읽으시고, 새벽기도를 단 한 번도 빠지지 않으셨습니다. 동산교회 맨 앞자리 세 번째 줄, 그곳이 늘 장모님의 자리였습니다. 그렇게 기도로 자녀들을 붙들어주신 은혜로 지금까지 걸어올 수 있었습니다.

◇ 진행자: 그러니까 장모님께서 홀로 자녀분들을 키우신 거네요. 쉽지 않은 길이었을 텐데요. 장로님도 삶 속에서 많은 선택의 순간을 맞으셨을 것 같습니다. 신앙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도 있으셨을 텐데, 그럴 때는 어떤 기준으로 결정하셨는지 말씀해 주시죠.
청주동산교회 사역현장청주동산교회 여름사역
◆ 박창영: 네. 살아오면서 정말 많은 선택의 순간이 있었습니다. 사업에서도, 가정에서도, 교회 섬김에서도 늘 갈림길이 있었지요. 그럴 때마다 마음속에서 이런 갈등이 올라왔습니다. '믿음을 따를 것인가, 현실을 택할 것인가.' 솔직히 말씀드리면 현실을 따라가고 싶은 순간이 더 많았습니다. 조금만 타협하면 일이 편해질 것 같고, 조용히 넘어가면 손해도 덜 볼 것 같고, "이쯤이야" 싶은 순간들도 있었지요.

하지만 그때마다 저를 붙잡아 준 것은 기도와 말씀이었습니다. 기도하다 보면 제 속에 숨겨진 욕심이 드러나더군요. 사실은 하나님의 뜻보다 제 뜻을 이루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때 멈추고 이렇게 묻곤 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이 선택을 한 뒤에도 기도할 수 있을까요? 이 선택을 하고도 예배드릴 수 있을까요?" 그 질문 앞에서 제 마음이 정리되고 중심이 바로잡혔습니다.

그래서 제 선택의 기준은 두 가지였습니다. '그리스도 앞에 부끄럽지 않은가, 시간이 흘러도 후회하지 않을 선택인가.' 이 두 가지를 붙잡으며 애써 살아왔습니다.

◇ 진행자: 네. 우리는 흔히 하나님께 묻기보다 달라고만 기도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장로님 말씀을 들으니, 선택의 순간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사업을 하시면서도 어려운 순간이 많으셨을 텐데요.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걸어오신 이야기를 들려주시면, 지금 어려움 중에 계신 분들에게 큰 위로가 될 것 같습니다.

◆ 박창영: 겉으로 보기에는 평온한 삶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저도 큰 고난이 있었습니다. 약 20년 전쯤, 수억 원대 사기를 당해 감당할 수 없는 위기에 처한 적이 있었습니다. 매일같이 그 사람을 찾으려고 수소문하며 다니던 때도 있었지요.

그때 저를 붙잡아 준 사람은 제 아내, 이미영 권사님이었습니다. 아내가 분평동 주공아파트를 정리하고, 빚도 갚고, 보험도 다 해지하면서 저에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우리가 함께 기도하지 않고, 봉사하지 않고, 십일조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을 주님께서 거두어 가신 거예요. 이제부터는 십일조 생활하며 봉사하며 살자." 그 말에 저도 깊이 동의했습니다.

그 후 저희 부부는 더욱 열심히 교회를 섬기게 되었습니다. 저는 성가대, 안내위원, 재정부 회계로, 아내는 교회 구석구석에서 헌신하며 함께 봉사했습니다. 지금도 그때를 돌이켜 보면 마음이 먹먹해지지만, 바로 그 고난 속에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게 된 은혜가 있었습니다.

◇ 진행자: 20년 동안 정말 많은 변화가 있으셨군요. 신앙적으로는 어떠셨습니까?

◆ 박창영: 네, 그렇습니다. 그 시간을 돌아보면,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신다"*는 그 말씀을 믿고 의지해 왔습니다. 제 삶이 바로 그 말씀의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정말 어려운 시기입니다. 제가 하는 일이 사업하시는 분들과 상담하는 일이라 경기의 흐름에 특히 민감한데요, 지금이야말로 가장 힘든 시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모든 분들이 깨어 기도하시길 원합니다. 주님께서 동행하시고 반드시 해결해 주신다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이 어려운 때를 함께 소망하며 기도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청주동산교회 여름사역청주동산교회 여름사역
◇ 진행자: 확실한 믿음으로 삶이 변하고,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로 축복해 주셨네요. 장로로 세움 받으셨고, 회사도 발전하셨고, 무엇보다 섬김의 본이 되신 것 같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돕는 배필'의 역할을 깊이 느끼셨을 것 같은데요. 장로님의 삶 가운데 아내 되시는 이미영 권사님은 어떤 동역자이신지 소개해 주시죠.

◆ 박창영: 제 아내는 저와 동갑이고요, 지금까지 40년 가까이 함께해 온 사람입니다. 교회학교 시절부터 늘 함께였지요. 삶의 여정을 돌아보면, 아내는 언제나 저를 믿음의 중심으로 이끌어주는 귀한 동역자였습니다. 제가 흔들리며 신앙의 자리를 놓치려 할 때, 아내는 따끔한 말로 제 마음을 일깨워 주었고, 다시 기도의 자리로 돌아오게 해 주었습니다. 늘 감사하고, 사랑하고, 존경하는 제 배우자, 이미영 권사님께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고맙다는 말을 전합니다.

◇ 진행자: 아내를 이렇게 높이 말씀하시는 분은 흔치 않습니다. 대부분 너무 편한 관계라 잘 표현하지 못하는데, 장로님 말씀을 들으니 평안한 가정을 이루는 비결이 바로 '존중과 존경'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오늘 또 하나 배우게 되네요.

◆ 박창영: 네. 올해도 성도님들의 사랑의 손길로 이어지고 있는데요, 이것은 단순히 아이스크림을 나누는 자리가 아니라 행복 나눔의 현장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특별히 올해는 이 사역을 통해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한 성도님께서 감동을 받으시고, 앞으로 3년간 매년 1억 원씩, 총 3억 원을 기탁하시겠다는 뜻을 밝히신 겁니다.

저는 현재 장학위원장으로 섬기고 있는데, 그 귀한 뜻을 받들어 다음 세대와 지역의 교육 사업, 꿈나무 지원을 위해 기금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교회와 위원들이 함께 지혜를 모아 의미 있고 뜻깊게 활용할 수 있도록 계획하고 있습니다.

◇ 진행자: 아이스크림 나눔 사역이 많은 분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을 주어, 더 크게 확장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 박창영: 네, 꼭 그 결과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 진행자: 장로님께서는 선교위원장을 맡고 계시지요? 캄보디아 시골 마을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봉헌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감동이 있으셨습니까?

◆ 박창영: 제가 작년에 사회선교위원장으로 있으면서, 목사님과 안수집사님 두 분과 함께 캄보디아에 다녀왔습니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저희 교회가 개척한 교회의 봉헌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요. 그곳에 가보니 정말 무더운 날씨, 척박한 환경, 그리고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아이들이 주님을 찬양하며 눈물로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장면이 큰 은혜와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봉헌식 때 저희가 '밀알'이라는 찬양을 특송으로 불렀는데, 저도 은혜를 받았고, 함께 간 목사님과 집사님들도 모두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찬양하고 봉사했습니다. 그 시간들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가"를 다시 깨닫는 은혜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청주동산교회 샬롬카페청주동산교회 샬롬카페
◇ 진행자: 장로님은 왕성하게 사회 활동을 하고 계시지만, 압축해서 보면 삶의 중심은 교회이신 것 같습니다. 장로님께서 가장 귀하고 감사하게 여기시는 인생의 축복은 무엇입니까?

◆ 박창영: 살아오면서 여러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사업이 잘 풀릴 때도 있었지만, 반대로 사람들에게 실망하거나 제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벽 앞에 선 적도 있었지요.그런데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선물을 꼽으라면, 첫째 아이가 믿음 안에서 귀한 자매를 만나 결혼하게 된 것, 또 둘째 아이도 교회 안에서 신실하게 믿음을 지키며 교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저희의 계획대로 된 것이 아니라, 가정의 중심을 믿음 위에 두게 하신 주님의 은혜라고 믿습니다. 자녀들이 그 믿음의 흐름을 따라가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뜨거워질 때가 많습니다. 돈이나 세상적 성공이 아니라, 우리 가정에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이 되고 기도가 끊이지 않는 것, 이것이 제 인생의 가장 큰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 진행자: 결국 믿음을 다음 세대, 자녀 세대에게 잘 전해 준 것이 가장 큰 선물이라는 말씀이시군요. 마지막으로 오늘 방송을 듣고 계신 청취자분들께 꼭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해 주시죠.

◆ 박창영: 네. 살다 보면 누구나 인생의 큰 갈림길 앞에 서게 됩니다. 어떤 길이 옳은 길인지, 어떤 선택이 나 자신을 살리고 다른 이들에게 유익이 될지 쉽게 판단하기 어려울 때가 있지요.

그럴 때 저는 하나님 앞에 멈춰 서서 기도하며 기다리는 법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단지 손해 보지 않도록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를 원하신다고 믿습니다. 그 믿음을 놓지 않는다면, 결국에는 "아, 주님께서 이 길을 예비하고 계셨구나" 하고 고백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 확신합니다.

◇ 진행자: 네, 장로님. 오늘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오늘은 '아이스크림 장로님' 동산교회 박창영 장로님과 함께했습니다. 이어서 조찬미 찬양, 「요게벳의 노래」 들으면서 인사드리겠습니다. 장로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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